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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영웅이 되는 쉬운 방법>-기증자 오현석 님

  • 2019-01-04
  • 조회수:375

https://blog.naver.com/kmdp0311/221149357965



기증을 하게 된 계기
어느 날, 헌혈의 집을 갔더니 조혈모세포 기증 관련 광고가 붙어있었다.

​피검사를 할 때 이것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.

그 날은 긴장이 안 풀렸는지 혈류속도가 빨라서 정작 헌혈은 못 했고, 등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로 피를 뽑았다(보통은 헌혈한 피를 가지고 등록한다고 한다).

​헌혈의 집 간호사분이 말씀하시길, 본인이 10여 년 전에 등록을 했는데 연락이 안 온다고 했다.
그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이 등록한 거라 진짜로 기증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.
그것도 약 1년 만에.
그렇게 내가 살면서 제일 잘 한 일 중 하나인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게 되었다.


기증 과정
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길 잃은 바이킹처럼 헤매고 있을 무렵,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연락이 왔다.

​일단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고, 기증해줄 것인지 물어보았다.

​나는 당연히 기증해줄 수 있었지만, 가족들은 많이 걱정한 모양이다.

​처음에는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.

​이유 중 하나는 기증 절차에 대한 오해였다.

​척추에서 고통스럽게 채취한다든가, 후유증이 심하다든가 하는 오해를 하셨기에 협회에서 받은 자료나 팜플렛 등을 이용해 열심히 설득했다.

​또 다른 이유는 안 그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가 나설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.

​나는 내게 도움 요청이 온 것이니 책임질 것이고 손해도 거의 안 본다고 대답했다.

​가족의 걱정은 기증이 끝난 지금도 줄지 않았지만, 어쨌든 하지 말라고는 안 하게 되었다.

정밀 검사를 위해 협회를 직접 방문했다.

​좀 길을 헤매다가 도착해서 여러 안내를 받았고, 피를 뽑고 혈압 측정 등을 했다. 며칠 뒤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연락이 왔다.

​그렇게 건강검진 날짜와 기증 날짜까지 척척 잡혀서 그대로 기증에 들어가는 듯 보였다.

​그런데 환자분 상태가 적합하지 않아서 두 번 연기가 되었다.

​이대로 환자분이 괜찮아지면 좋은 거긴 한데, 살짝 찜찜한 채로 지내다가, 다시 연락이 왔고 이번엔 진짜로 하게 되었다.

기증 약 한 달 전 건강 검진을 받았다.

​피검사나 소변검사, CT촬영 등 많이 해 본 검사도 받았고, 심전도 검사도 처음 받았다. 내가 그렇게 건강하게 지내지 않은지라 재검이 뜰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하자 없이 통과했다. 기증 며칠 전부터 촉진제를 매일 병원에 직접 왔다갔다하며 맞았다.

​설마 한 팔도 아니고 양팔에 맞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. 촉진제는 조혈모세포가 혈관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부작용이 좀 있다.

​개인차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허리가 계속 쑤시고 잘못 움직이면 몸 전체가 몸살 난 듯 아팠다.

​기증 후에는 씻은 듯이 없어졌지만 말이다.

기증 전 날 입원했다. 넓은 1인실에 입원해서 정말 편했고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.

​협회 직원 분들이 다 친절하듯이 의사나 간호사 모두 친절했다. 협회 직원 분에게 간식도 많이 받았고, 간호사가 와서 정기적으로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고, 의사가 와서 나는 최종 동의서에 사인했다.

​드디어 기증 당일이 되었다.

​채혈실로 내려가서 양팔에 바늘을 꽂고 시작했다.

​그런데 나는 혈관이 좋지 않아 피가 나가는 오른팔을 묶고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 했다.

​확실히 4시간 이상 이걸 반복하니 확실히 팔이 끊어질 듯 아프고, 지루하기도 했다.

​그래도 채취하는 기계가 째깍대는 소리에 맞춰 열심히 잼잼을 하니 예상보다 조금 일찍 끝났고, 간호사도 칭찬해줬다.

​혈관 팩에 나에게서 뽑아낸 조혈모세포가 모인 걸 보니 묘하고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. 물론 기증 당일에는 지치긴 했으나, 별 이상 없이 다음 날 퇴원했다.

그렇게 조혈모세포 기증이 끝났고, 내 삶은 기증 전과 차이 없이 굴러갔다. 그리고 얼마 후에 감사패가 왔다.

​감사패를 보니 내가 기증을 했다는 실감이 났다.

​그 동안 왠지 실감이 안 났었는데 아마 후유증이 안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.

​근육통이 있던 몸도 다음 날 멀쩡했으니 말이다.

​기증 후에 확인 차 피검사를 하러 다시 병원에 다녀왔고, 아마 이상이 없을 것이다.

 

기증 후, 마무리
조혈모세포 기증은 확실히 힘들다.

​주사바늘에 10번 이상 찔리고, 며칠 동안 근육통에 시달리다 입원하고, 굵은 헌혈바늘에 찔린 채 몇 시간 동안 오른팔을 묶은 채 손을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는 일은 힘들다.

​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행동인 것 치고는 매우 쉽다. 특히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은 헌혈을 자주 하는 사람에겐 고급 헌혈로 여겨질 만큼 쉽다.

친구들에게 기증 사실을 자랑하고, 어떤 카페에 기증 후기를 올렸다.

​수고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, 몇몇 사람들은 나를 대단하다고 했다.

​하지만 사실 나는 소인배다.

​세상엔 남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거나, 목숨을 희생하거나 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많지만, 나는 그렇게 못한다.

​일단 내 안위, 내 가족의 안위를 챙겨야 남을 도울 여유를 가질 수 있다.

​그렇기 때문에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수 있었다.

​이번 일도 그냥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 줬을 뿐이다.

예전보다는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자가 많아졌다고 들었다. 건강검진을 할 때도, 처음 촉진제 주사를 맞을 때도 나처럼 기증을 하는 분이 한 분 더 계셨다.

​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증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, 기증에 관심이 없다.

​우리 가족도 그랬고, 내 친구들도 거의 다 그랬다. 앞으로 이 글이 더 많이 퍼져서 더 많은 분들이 기증에 동참했으면 좋겠다.

​그러면 누구나 사람을 살린 영웅이 되어서 내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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